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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역사의 주체 (1)

이기백 : 민족의 역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역사의 민족이 되어야 한다.
2004 (South Korea) In fact, history does not belong to us, but we belong to history. (Hans-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1989)
과거의 사실은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의 사건은 과거의 사실과 연관되어졌을 때만이 그 의미가 더욱 확연해질 수 있다.
이 수업은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다루고자한다.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오해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우리 인간이 만들었다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서이다. 종교에서는 인격신이 이러한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고 보았던 반면에 또 헤겔은 우리의 밖에 외재하는 절대정신이 자신의 외화과정으로서 드러낸게 우리가 사는 세게이다. 니체는 신이 죽어버린 세계에서도 이 세계의 주인공은 우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하는 수업은 역사 속의 주인공으로서 인간에 맞추어져있다. 그렇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역사의 주인공을 ‘민족’으로 설정한다면 이는 초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전제한다. 즉 민족은 피와 살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신으로 승천하여서 우리와 같이 이 땅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개인의 결합으로서 계급과 민족에 기반하여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다.

영웅사관

주체 및 연구방법론
역사의 주체로서 영웅으로 표상되는 지배계급이 역사의 주인공이다. 연구방법론으로는 실증사학과 친화력이 존재한다. 왜냐면 역사에서 남아있는 자료는 그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즉 승자의 기록만 남아았기에 그렇다.
과거에 역사의 주인공은 당연 영웅이었다. 이를 우리는 영웅사관으로 불렀다. 역사를 서술할 때에 항상 그 주인공은 위인이자 ‘영웅’이어야만했다. 사마천의 사기의 인물열전을 보라!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플류타크의 영웅전을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고 영웅이 선인만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역사에서의 승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대한 경계(警戒)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했는지 알아보면 영웅은 항상 미래지향적인 시선과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전체의 공익적인 부분에 염두를 두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어서이다.
아놀드 토인비 : 문명의 생성과 해체를 외적 내적 조건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는 공식으로 설명한다. 외적 내적 도전에 대응하여 그 사회를 계속 성장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을 이러한 ‘창조적 소수의 응전능력’에서 찾았다.
역사에서의 변화는 즉 영웅 즉 창의적 소수자들이 이루어낸다.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 해 주는 학자는 아놀드 토인비가 대표적이다. 토인비의 저서<역사의 연구>에서 창의적 소수자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주인공이고 지금과 같은 사회를 가져오게 만든 인물이라 말한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단어가 토인비의 저서에 많이 언급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끊임없는 도전 속에 있고 또 그것을 이겨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은 창의적 소수자들만이 할 수 있다. 다만 도전은 중용이어야한다. 넘치거나 부족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창의적 소수자의 행위를 다수의 사람들이 모방을 통해서 사회에 확산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창의적 소수자들의 대응을 통해서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 나은 사회로 변화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Toynbee argues that civilizations are born out of more primitive societies, not as the result of racial or environmental factors, but as a response to challenges, such as hard country, new ground, blows and pressures from other civilizations, and penalization. He argues that for civilizations to be born, the challenge must be a golden mean; that excessive challenge will crush the civilization, and too little challenge will cause it to stagnate. He argues that civilizations continue to grow only when they meet one challenge only to be met by another, in a continuous cycle of "Challenge and Response". He argues that civilizations develop in different ways due to their different environments and different approaches to the challenges they face. He argues that growth is driven by "Creative Minorities": those who find solutions to the challenges, who inspire (rather than compel) others to follow their innovative lead. This is done through the "faculty of mimesis." Creative minorities find solutions to the challenges a civilization faces, while the great mass follow these solutions by imitation, solutions they otherwise would be incapable of discovering on their own.(마키아벨리의 논리를 copy하셨어요!!) 창의적 소수자를 비루트를 가진 정치지도자로 바꾸어내고 이러한 정치지도자를 모방해낸 시민만이 독립과 자유를 지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도 독창성이 인간사에서 가치 있는 요소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서 예전의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관행을 만들고, 보다 계몽된 행위와 더 나은 취향과 새로운 감각의 모범을 보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항상 필요하다. 기존의 방법과 관행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는 한, 이러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시도로 기존의 관습을 어느 정도라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전체로 볼 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수가 세상의 소금이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우리 세상은 고여 썩어가는 물 웅덩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만일 세상에 더 이상 이루어져야 할 것이 없다면, 인간의 지성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옛 관행을 답습하는 사람들은 왜 그것이 행해지게 됐는가를 망각하고 마치 소처럼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아무리 좋은 신념이나 관행이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기계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만약 항상 새로운 독창성을 가지고 신념과 관행이 인습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신념과 관행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버티지 못할 것이며, 비잔틴 제국에서와 같이 문명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천재는 극소수이다. 천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있어야 한다. 천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천재는 천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개성이 강하다. 천재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제한된 몇가지 유형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천재들이 소심하게 행동하여 강제적인 틀에 적응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래서 자신의 재능이 억압되는 데 동의한다면, 사회는 그 천재들로부터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강한 성격을 소유하여 이 굴레를 타파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보통 사람으로 축소시키는 데 실패한 사회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난폭한 사람’, ‘괴팍한 사람’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나이아가라 폭포에게 왜 네덜란드 운하처럼 둑 사이를 온순하게 흐르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연세대학교 논술시험 지문
변화의 주인공은 혁신자!
대표자로서는 기술혁신을 주장하는 슘페터가 있다. 사회의 발전을 사회체제 내부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서 찾고 있어서이다. 슘페터의 논의는
자본주사회에서의 발전, 진보는 노동자의 몫이라고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자(innovators)의 몫이라고 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전은 기술혁신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그것을 통한 부는 창의적인 혁신자들이 가져야한다고 보았다. 우리나라 기업인 이건희 회장이 한사람이 10만 명의 노동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였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누구나를 말하는게 아니다. 이를 역사의 장으로 가져오면 위인, 영웅으로 서술되어 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서술은 사회발전을 이룬 영웅위주로 이루어진다고 말을 한다. 역사주체로써 영웅은 대체로 그 사회의 지배계급 즉 승자위주로 역사서술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본질상 경제 변화의 한 형태이거나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진화적 특성은 단순히 경제적 삶을 둘러싼 사회적, 물리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경제행위의 내용이 바뀐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며, 산업 변화는 종종 이러한 변화들(전쟁, 혁명 등)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변화들이 산업 변화의 일차적 동인(動因)은 아니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의 진화적 특성은 인구와 자본의 자동적 증가나 금융시스템의 예측치 못한 변동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추진력은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 방식 또는 수송 수단, 새로운 시장, 자본주의 기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산업조직의 구성 등으로부터 온다. [……중략……]
1760년에서 1940년 사이에 노동자의 수입은 단지 지속적으로 성장한 데 그치지 않고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마찬가지로 일찍이 윤작(輪作), 쟁기질, 거름주기와 같은 합리적 농법이 도입되었을 때부터 곡물 창고, 철도 등과 연계된 오늘날의 기계화된 방식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산체계의 역사는 잇단 혁명의 역사였다. 대장간 화덕에서 오늘날의 용광로에 이르는 철강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 물레방아에서 현대적인 발전소에 이르는 전력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 역마차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수송의역사도 그러하다. 해외 또는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의 출현과 철공소에서 U.S. Steel *로의 발전은 ― 생물학의 용어를 쓴다면 ― 모두 산업적 돌연변이의 과정이며, 이것은 쉴 새 없이 내부로부터 경제구조의 혁명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오래된 것을 부수며,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자본가가 주목해야 할 자본주의의 요체이다. * U.S. Steel: 미국의 대표적인 철강회사
SK의 대표적 경영자였던 이거니는 ‘10만명을 먹여살리는 1인의 힘“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빠는 ‘인재보국’을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훌륭하신 1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웅주의 사관의 문제점
역사학에서 역사적 해석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실증주의, 상대주의, 역사주의적 시각이 있는데 이중에서 영웅사관은 실증주의와 같다. 실증주의는 역사적 기록중심 이론인데 대체로 지배계층에 포커스만을 맞추어 기록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입장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에 남북전쟁 일으킨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이라는 목적으로 발생한 전쟁이라는 관점은 전형적인 영웅사관에 역사서술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전쟁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링컨 개인의 결단으로 남북전쟁의 발발로 보지 않고 사회구조에서 먼저 찾게 된다. 남과 북의 경제적 구조, 사회구조에서 상이점 즉 남의 플랜테이션농장같은 전근대적인 방식에 경제적 기반을 둔 대농장주와 북의 산업화된 근대 자본주의에 자본가의 이해관계 충돌로 접근한다. 1차 세계대전도 오스트리아 황제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에게 암살되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제국주의, 서로 간에 각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영웅사관은 이처럼 개인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감추어진 사회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즉 사회구조에 대한 시각이 결여되어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승자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패자는 무시되어지는 승자 독식주의가 발생하고 미화과정에서 역사를 왜곡되어지고 패자들에 올바른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웅사관으로 역사서술을 하게 되면 역사는 정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정치사에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으로만 바라보는 게 되어 사회 경제적인 측면이 무시되면서 역사는 정치사로만 축소되어 진다.
한국사에 권위자인 이기백 교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실증주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사를 서술 할 때 역사에서의 주체를 지배집단으로 보고 역사 서술에 있어서도 지배집단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신라시대 골품제에 기반한 성골과 진골의 씨족사회, 고려시대 대농장을 소유한 호족과 명문세가, 조선 유교를 공부한 신진 사대부 지배계층 이였다. 이기백 교수가 실증주의 입장에서 서술하였을 때 역사는 정치사로 축소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영웅사관(지배계급) 서술 방식은 사회구조를 간과하고 역사에 패자들을 무시하게 되고 역사를 정치사로만 축소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초래하는 문제는 ⓵ 개인에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변화를 추동해낸 사회구조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즉 개인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역사상황과 역사의 발전과정이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무시되어진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를 대립구조에서 포착하고 특정한 ‘개인’에 더 높은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⓶ 이는 사회변화를 설명해낼 수 있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설명의 결여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와 그를 둘러싼 사회집단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⓷역사 속에서 사회구조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서로 상이한 인물들 간의 정치적 쟁투와 이합집산으로만 보인다. 정말 진정한 변화는 보이지 않은채 끊임없는 인물들 간의 권력투쟁으로만 보인다. 역사가 정치의 역사로서만 왜소해지면서 다른 사회부문에 대한 관심이 현격히 떨어진다.
대립의 문제를 개인과 사회구조의 관계로 바라본다면 이는 구조적 원인을 찾아낼 수 밖에 없어서 역사에서 그러한 변화를 초래한게 바로 개인의 위대한 결단 아니면 즉홍적 결정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또한 두 번째 승자와 패자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이는 패자에 대한 무시로 나아가 역사는 편향의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운 한탄보다는 승자들의 우쭐대는 기록으로만 가득차 있어서이다. 이부분에 대한 서술에서는 신채호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유일한 정사로 만들기 위해 전해, 내려온 <화랑세기>, <(구)삼국사>와 같은 옛 기록을 궁중에 비장(秘藏)하거나 소실시켰다고 비판했다. 이후부터 개인의 역사편찬은 금지당하거나 야사(野史)로 취급됨으로써 왕의 명령으로 편찬된 역사만이 정사로서 인정받는 전통이 확립됐다
살아남아서 부끄러운 사람도 있다.
세 번째는 정치와 다른 사회부문의 대립으로 보인다면 이는 역사의 터무니 없는 왜소화로 귀결될 수 있다. 역사는 별볼일 없는 정치판 난장이들의 기록으로만 보일 뿐이다.
이기백 실증사학이 갖는 문제점은? 그의 실증사학으로는 지금 우리가 국내외적으로 당면한 역사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일본·중국의 역사적 사실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학 현실이다. 일본 우익 역사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우리가 아무리 시정을 요구해도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은 그것은 사실 왜곡이 아니라 또 다른 역사해석이라는 것이다. 실증사학은 역사가가 주어진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만든다는 실제 작업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과거는 사라지고 없고, 남아 있는 것은 기억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분쟁은 사실과 해석의 관계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기억투쟁, 곧 특정 과거를 누가 어떤 기억으로 전유해 역사로서 공인하느냐를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런 역사의 담론적 투쟁에서 과거와 역사가 일치해야 한다는 실증사학의 진리론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평가 : 영웅은 사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만 역사의 무대에 오른다. 즉 그들이 세계를 만드는게 아니라 세계가 그들을 부를 때 나타난다. 그들이 가진 자질은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자질 역시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었을 때만이 그들은 역사무대에 영웅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서 이성의 간계로 설명하는 헤겔처럽, 영웅은 대리인일 뿐이다. 한편으로 그들의 위대함은 바로 그러한 변화의 구조를 나끄어챌 수 있는 예지가 있어서이다. 위대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위대하지만 넘 과대평가하지 마라는 것이다. 영웅도 인간이고 인간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서 포착되어진다는 것이다.

민중사관(계급사관)

이기백의 과학적 역사 연구방법론은 실증사학이다. 그는 실증사학을 과거의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생각되는 객관적 사실들을 하나의 실에 꿰서 연결을 지어주는 작업, 즉 체계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로 서술돼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기에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도권을 쥐었던 지배세력이 누구였는가를 찾아내 그들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전체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사신론>에서 신석기시대에는 씨족사회 구성원 전체가 지배세력이었다면, 신라시대에는 성골과 진골이란 골품이, 고려시대에는 호족이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그리고 마침내 근대에서는 민중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한국사 이야기의 플롯을 구성했다.
이와 대립되는 역사주체에 대한 접근의 방법으로서 민중사관이 있다. 이들의 역사의 주체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특히 피지배계급으로서 민중이 그 주체라는 입장이다. 이들이 역사의 발전이란 관념과 함께 변화를 주도하는 보편계급이라는 견해이다. 이기백과의 차이는 그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했다면 이 사관은 항상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승자 대 패자, 과거 대 현재, 지배계급 대 피지배계급이라는 대립항을 갖고 실증주의 사관과 대립되어질 수 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름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많고 적고 간에 무의식적으로 함께 행동하면서 형성되는 사회적 힘’,즉 무의식적 힘이라는 실체에서 찾고 있다. 개인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사회적 실체로서 역동적인 계급을 그 중심으로 잡고 있다.
뛰어난 개인,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회적 배경, 즉 개인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사실이나 사회 속의 다수가 형성하는 사회적 힘과 분리시켜 사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카에 의하면 ‘위대한 인물은 항상 현존하는 세력의 대표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가 창조를 돕는 세력의 대표자’이다. 다시 말하면,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담지자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이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문제와 강점 : 이러한 역사관의 대표자가 마르크스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편 보편법칙에 맞추어 역사를 꿰맞추는 경향을 보인다는게 한계지만,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대상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영웅으로서 개인은 하나의 사회집단으로서 계급의 대표자에 불과하고 역사를 계급간의 대립과 갈등이 역사를 이루어내는 축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이런 계급사관(유물사관)은 생산력에 이루어낸 그 결과물의 분배(생산관계)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생겨나고 그 계급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이러한 충돌에서 역사의 변화와 진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칼 막스가 있다.
칼 막스는 근본적으로 영웅과 지배계급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웅에 대해 계급 간에 대립에 있어서 대표자에 불과하고 영웅(개인)이 역사변화에 주인공이라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고 진정한 역사변화에 주인공은 계급이라는 견해를 펼쳤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에서도 피지배계급(민중)이 역사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이 정복하고 그 과정 속에서 진보가 이루어져 지금과 같은 발전을 가져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것을 민중사관이라 칭하는데 이와 같은 사관이 일반적인 서술방식이다.
E.H카가 역사해석을 합리주의를 주장하는데 과거 식민지하의 산업발전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충돌하는데 E.H카는 식민지하의 산업발전이 민중에 삶을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행복한 삶인가를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역사서술은 피지배계급(민중)에 자유와 권리가 확장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에서 피지배계급의 중심의 서술로는 로마의 스타르타쿠스 반란, 지배계급의 중심의 서술로는 케사르 등이 있을 것이다. 피지배계급의 반란을 통해 역사진보를 가져온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스타르타쿠스와 같은 인물, 지금까지 다루지 않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복원 시키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민중사관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조선편수회는 역사를 도서관에서 자료 관리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 한 것처럼 객관적인 형태로 기록하였다. 조선편수회의 관리 층 조선총독부 의식을 식민사관 이라 하는데 이 식민사관에 성격은 정체성(퇴보성), 타율성 이여서 결국 조선편수회는 역사서술에 가치중립적 입장을 유지 하면서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의존하여 역사 사실만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입장만을 고수한다.
이런 타율성으로 일본에 제국주의가 조선의 발전을 가져다주고 한반도 역사는 일본 해양세력, 중국 대륙세력이 항상 주인공이라는 시각인데 이러한 식민사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인공은 우리 민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민중사관이라고 부른다..
조선은 조선의 발전을 스스로 이룬 적이 없다 즉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식민사관의 시각을 부정하고 이러한 것은 발전에 과정일 뿐이라는 시각은 칼막스와 같은 시각이다. 우리의 조선에 역사도 끊임없는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생기는 부를 가지고 대립 간에 투쟁을 통해서 사회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 졌다는 이론을 사회경제사학이라 한다.월북한 백남운은 1931년 <사회경제사학>에서 우리 한국역사를 통해서 주장을 확인하려 하였다.
칼막스는 인류 역사 발전 단계를 5단계로 원시공산주의,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사회주의를 겪는다고 하는데 백남운은 이러한 발전 단계를 우리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하면 조선에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넘어 가는데 일본에 힘이 아니라 조선의 농업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적은 노동력으로 광작 이루어지고 인구가 분해되어 도시로 향하게 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된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칼막스가 말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백남운의 연구 결론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제국 의해서 아니라 우리 자력으로도 근대 자본주의로 나갈 수 있는 맹아(자본주의 맹아론)가 보인다고 하였다. 백남운의 역사서술은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통해 계급 간에 투쟁이 이루어지면서 사회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계급사관으로 서술하고 민중의 역할을 주목한 인물이다. 이러한 논리는 칼막스 인류역사 발전 5단계를 한국역사에 맹목적으로 그대로 반영하였다 하여 문제가 있다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일반적인 역사서술 방식은 민중사관, 민족사관이다. 그러면 칼막스가 말한 민중에 의해서 쓰여 진 역사를 보편적인 단계에 짜 맞춰 서술하는 측면 또 한편으로는 역사를 집단에 포인트를 맞춰 져서 창의적 소수자 측 개인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사학의 반대편에는 백남운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사학이 있었다. 백남운은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법칙이라는 보편성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이해했으며, 이러한 보편성을 인식하는 것이 한국사연구의 기본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사회경제사>(1933)에서 유물사관의 도식에 입각해서 원시 씨족사회로부터 삼국시대 노예제사회, 신라통일기 이래 동양적 봉건사회 그리고 이식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으로 한국사를 체계화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사적 보편법칙에 입각해서 일방적으로 한국사의 개체적 발전과정을 재단하는 것은 결코 역사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기백 선생의 주장이다.
대표자 :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기반한 역사 5단계발전법칙
내가 계급사관이 아닌 민중사관이 올바르다고 보았던 이유는, 그러한 민중사관이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장이 무조건 올바르다는게 아니다. 그들만이 이익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주장하는게 보편자의 이익에 부합되어져서이다. 그렇다면 지배자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그렇지가 않은게 귀족정인데, 이러한 귀족정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지배가 아니라고 일반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변자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대표가 되어진다는게 아무런 모순이 안되어진다고 생각하는게,그들이 대표한다는게 ‘일반자’여서이다.

민족사관

주체 및 연구방법론 : 근대이후의 역사관이라고 한다. 민족을 역사의 가운데에 놓고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가의 성립과 함께 국민의 형성과 함께 한다. 국민은 외피이고 그 내용은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을 확보해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민족주의가 대두되어져있다 본다.
민족주의는 국민국가의 형성과 또한 국민국가의 침탈을 통해서 다시 민족국가의 독립을 필요할 때 강력해진다. 아니면 정치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도 작용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한국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한국사를 “우리민족이 걸어온 발자취이자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우리민족’이란 누구인가. 우리 민족이란 한국사를 통해서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지, 한국사를 정의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민족의 역사’이기에 앞서 ‘역사의 민족’이어야 한다. 이렇게 민족을 초역사적인 실체로 전제하고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바로 ‘국사’다. 그런데 ‘국사’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근대 민족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만들어진 역사서술 모델이다.
한국 역사학에서 ‘국사’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한국사만을 특별하게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국사’란 역사로써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으로써 역사를 구성하는 한국 역사학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즉 민족으로서 역사를 재구성해낸다는 의미이다. 한국사는 바로 한국민족으로서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미이다.
신채호는 인간을 중심으로, 그것도 보편적인 인간이 아닌 ‘아’라는 특정집단, 곧 민족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정의했다. 그에겐 역사란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하는 정신적 활동의 상태을 기록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
서구 근대 역사개념이 인류 전체의 역사를 포괄하는 보편사를 지향했다면,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의 동아시아 근대 역사개념은 동일하게 그런 서구 보편사에 대항해서 민족사의 정립을 목표로 삼아 성립했다. 동아시아 근대 역사개념이 이처럼 민족주의적 기원을 갖는다는 태생적 한계가 동아시아 역사전쟁을 재연시키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20세기 초 조선은 중화주의라는 중세적 세계관에서는 탈피했지만,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통해 식민지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다. 한국 근대 역사학은 이런 현실의 위기에 대한 역사적 진단과 미래를 위한 역사적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당위로부터 성립했다. 제국주의가 강자의 논리였다면, 약자의 논리는 민족주의가 되었다. 한국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 신채호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조선이 독립국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의 전체 과거를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통사로서 ‘국사’의 정립이 요청된다고 믿었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을 넘어서기 위해서 만들어진 역사관이다.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신채호는 우리를 민족의 집단 그리고 우리와 다른 민족 집단 이라는 대결 구도로 역사를 서술한다. 계급사관은 한 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대립시키고 두 계급의 갈등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였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이후에 출연하여 국민국가 성립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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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독일 등 은 근대이전에는 작은 나라 형태로 공화국에 불과하였고 우리가 마치 신라, 백제, 고구려 작은 나라로 쪼개진 상태로 병존해온 것과 같은 형태였다. 이런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런 작은 나라들이 통일 되면서 국민국가가 만들어지면서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신채호가 주장하는 우리민족과 우리와 다른 민족의 대립구도로 역사를 서술하는 민족주의 역사관은 식민지하에서는 가능하나 단군신화 까지 소급하여 서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역사는 변화되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해석하는데 민족사는 변화되지 않는 초월적 실체라 한다. 그래서 민족주의 역사관은 형용모순(oxymoron)에 빠져있는 것이라 말한다. 즉 변하지 않는 개념을 가지고 변화하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역사 속에서 민족을 포착해야하는데 민족의 역사란 역사 위에서 민족을 포착하는 것이라 말한다.
또 다른 문제로는 다른 민족을 배척하고 자기 민족을 우월감을 갖고 왜곡과 자기정당화를 하려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광개토대왕비를 찾아낸 일본역사학자가 일본에 대해 불리한 비문에 내용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고 그리고 일본에서 우리 민족의 타율성과 정체성에 대해 지적하며 나오는 역사 이야기로 조선시대에 죽은 황후의 장례를 며칠 동안 할 것인가 놓고 논쟁을 벌인 예송논쟁이 있는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을 철학적 베이스가 있는 가치 있는 논쟁으로 해석을 한다. 이와 같이 민족사관은 왜곡과 자기정당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민족과 민족의 대립과 민중주의 역사관은 계급과 계급간의 대립을 놓고 설명을 한다. 식민지하에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민족주의자는 찬성하지만 민중주의자 들은 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다. 민족을 중심을 놓고 역사서술 하는데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으로는 민족이라는 깃발을 들고 사회에 부정적인 부분을 가리려는 독재자가 일 것이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독재자들은 민족주의자다. 중국에 시진핑은 대만은 자기네 영토라 말하고 러시에 푸틴도 위대한 러시아 민족주의를 부르짖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북한에 김정은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라 부르짖는다. 이러한 주장으로 독재자들의 권력은 강화 되고 동북아 평화를 가로 막고 있다. 유럽은 민족주의가 강화되지 않아 유럽연합이라는 협의체 가능하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문제점이 있지만 현실세계에 있어서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문제 : ⓵ 초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전제하기에 역사의 기본가정에서 벗어나있다. 초역사적 실체인 민족으로 변화하는 역사를 서술하는 모순을 원천적으로 지닌다. 비판은 민족이란 개념은 민족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만들어진 역사서술 모델이다.
⓶ 또한 민족을 중심에 놓고 서술한다면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면서 단순한 지배계급의 서사로서 민족주의가 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근대 역사개념이 이처럼 민족주의적 기원을 갖는다는 태생적 한계가 동아시아 역사전쟁을 재연시키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위선적인 독재자의 통치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 역사학이 그 뒷받침을 제공하고 있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역사의 왜곡으로 나아갈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사의 경우, 민족주의란 이름 아래 당쟁은 철학논쟁으로, 사대는 민족 이익을 도모한 최선의 외교로 평가되곤 했다. 또한 주희의 해석을 절대 권위로 확립한 조광조-이황-송시열이 선비의 표상이 되고 최강국 청나라와 싸우겠다는 몽상이 애국으로 신성시되면서, 백성들에게 전란과 패배의 고통을 겪게 한 이들의 책임은 잊혀졌다
대표자: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
이기백 민족주의 역사관 비판
식민주의 사학에 입장 : 지리적 결정에 근거한 타율성과 정체성론의 비판에 있다. 따라서 내재적 발전론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에 부응해주는게 바로 민족주의 사학이었다.
이기백은 역사를 민족의 역사로 환원하는 국사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사’를 재구성해야한다고 보았다.
민족주의 사학의 문제점은 한국사의 개별성을 특수성 내지는 고유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세계사적 보편성과의 연관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사학은 “한국민족을 인류로부터 고립시키고 한국사를 세계사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결국은 민족의 우열론으로 기울어져서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를 자라나게 한 것과 같은 온상을 제공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뉴라이트는 식민지근대화론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리라고 한다. 즉 객관적 데이터를 실증분석해보았을 때 식민지화의 산업발전이 근대화로의 출구가 되어진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민족’이란 관념의 산물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따라서 민족국가가 아닌 진영국가로서의 성립을 기념할려고한다. 따라서 1948. 8.15일을 ‘건국일’로 삼으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