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조짐이 이상하더라니, 역시나 올해로 또 망할 모양이다. 어설픈 기대는 접기로 했다. 묻어버릴 것은 미련 없이 얼른 묻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내가 먹고살겠다고 학원 바닥에 첫발을 디딘 게 지난 2006년이었다. 올해가 2026년이니 꼬박 21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세 번을 망했고, 올해로 네 번째 엎어지는 중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전까지는 매번 망할 때마다 시장은 내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올해 나를 주저앉히려는 놈은 이전에 겪었던 애들하고는 조금 달라보인다.
내가 학원가에 들어선 것은 '이해찬 세대'의 대입 개혁안이 휘몰아치던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논술이 깡패였고 대세였다. 여름방학 무렵에 보던 수시 1학기, 수능 이후의 수시 2학기, 심지어 수능 점수를 들고 겨루던 정시까지 매 단계마다 논술 시험이 있었다. 수험생 하나가 대학에 가려면 일년에 세 번씩 논술을 치러야 했으니 시장이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그 시절의 겨울들은 내게는 참 따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교육의 주범은 논술"이라는 칼바람이 불어왔다. 수시 1학기가 폐지되고, 정시에서 논술이 빠지더니, 수시 2학기 선발 인원마저 반토막이 났다. 첫 번째 춘궁기였다. 게다가 내가 처음 문을 열었던 일산은 한창 특목고 붐이 불어 웬만한 상위권은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통과해 논술 고사장이라도 들어갈 만한 아이들이 씨가 말랐다.
범털에서 개털로 한순간에 몰락한 나를 살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입 시장'이었다. 대입 논술의 규제가 심해지자, 내 눈길은 자연스럽게 외고와 자사고를 준비하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로 내려갔다. 마침 아이들이 민사고나 외대부고, 고양외고를 가려면 고입 과목으로 '언어·사회 구술면접'을 봐야 했다. 이게 대입 논술의 변형판이었다.
"엎어질 때 엎어지더라도 개똥참외밭에 엎어지라고 했던가." 대입 시장이 박살 나서 등 떠밀리듯 중등부로 내려왔는데, 거기가 훨씬 더 달았다. 얼마나 달았냐고? 일산 아이들이 먼저 민사고를 썼다가 떨어지면 대원외고나 대일외고 같은 서울권 외고를 썼고, 거기서 또 미끄러지면 고양외고나 경기외고를 연달아 지원했다. 떨어질 때마다 우리 학원으로 아이들이 다시 몰려들었으니, 참 기이하지만 달착지근한 전성기였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그 꽃이 어찌 백일을 가겠는가. 정부가 고입 사교육을 잡겠다며 구술면접을 한 방에 폐지하면서 두 번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대입도, 고입도 갈 곳이 없어지자 나는 국·영·수 종합학원으로 리스트럭처링을 감행했다. 다른 강사들을 뽑아 타 과목을 맡기고, 나는 대입 논술과 구술에만 전념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내 DNA 자체가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수학과 영어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목이고, 난 수학과 영어 강사들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학원은 점차 말라비틀어지는 망아지 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와 고려대가 논술을 완전히 폐지하면서 '논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로 뿌리가 뽑히던 날, 나는 모든 것을 털고 강남으로 홀로 들어왔다.
엎었다 뒤집었다 하는 한국 입시에 진절머리를 느껴서, 나는 해외 대학을 진학하는 국제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급 에세이' 수업을 시작했다. 8년 전 쯤인가 싶다. 처음에는 남의 학원 강의실 하나를 빌려 쓰고 다른 영어학원에 출강을 하면서 서서히 자리가 잡아졌다.다. 제주국제학교까지 영역을 넓히며 나 혼자 오붓하게 지낼만산 터전을 닦았다 생각했는데, 지난 겨울 때 아닌 돌풍이 소리 없이 불어닥쳤다.
이전까지 내 학원을 망가뜨린 범인은 언제나 '정부의 정책'이었다. 입시의 최전선이자 막장에 서 있다 보니 정책이 출렁거릴 때마다 내 학원도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해외 대입 에세이 시장은 정부 정책과 상관없이 언제나 견고한 '상수'인 줄 알았다. 내 착각이었다.
이번에 나를 주저앉힌 것은 정책이 아니라 '제미나이(Gemini)'와 '클로드(Claude)' 같은 인공지능(AI)이었다. 이 녀석들은 단순히 번역만 잘하는 게 아니라, 웬만한 선생보다 글쓰기 멘토링을 더 정교하게 해낸다. 특히 내게 오던 '고급 글쓰기'를 하던 상위권 아이들은 혼자서도 AI를 활용해 자신의 에세이를 보완할 만한 애들이다.. 내 마지막 밥줄이던 고급 에세이 시장이 발밑에서부터 확 무너져 내렸다. 네 번째 엎어지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과 겨루다 돌을 던지고 바둑판을 떠난 이세돌의 마음이 비로소 손에 잡힐 듯 이해가 간다. 신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과 글쓰기마저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시대를 보며, 나 역시 세돌이처럼 돌을 던지고 낚싯대나 드리워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머리 정수리는 차가운데 내 몸뚱아리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가급적이면 오프라인에 기대를 하지말고 대신, 21년 동안 쌓아온 내 모든 강의 자료와 노하우를 유튜브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등 온라인 영역으로 쏟아붓는 것으로. 또한 출판에서도 매년 대입 준비서를 2권씩만 냈는데 수업이 줄어들었으니 3권정도를 더 보강해서 내는 것으로 말이다.
이 판에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다고 쫄딱 망해서 퇴장한다고 억울할거 같지도 않다. 아직은 살아 있는 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복받은 삶인가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서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