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사나이가 있다. 스파이였던 빡빡이 율 브린너이다.
어릴적 동네극장 앞 포스터에서 보았던 율 브린너의 강렬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돈이 없어 영화 <에스피오나지>를 직접 보진 못했다.
그걸 보고 친구가 했었던 자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 속에 남아있다.
"율 브린너가 소련 스파인데, CIA의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다니까!"
(원제는 '뱀Serpent'란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떠올랐냐 하면,
지금 내 처지가 딱 그 거짓말 탐지기 앞에 선 율 브린너 같아서다.
이제 나도 AI라는 최첨단 거짓말 탐지기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베테랑 스파이'가 되어야 할 판이어서다.
전 세계 고등학생들의 에세이 전쟁터인
'존 로크 에세이(John Locke Institute Essay Prize)' 마무리가 지금 한창이다.
이미 5월 말로 정규 마감은 끝났고,
지금은 꼼지락거리는 학생들을 위해 며칠간 연장된 '지각 제출(Late Submission)' 기간이다.
작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6만 3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대회에 글을 보냈다 한다.
말도 안된다. 놀라운 건 그 뒤에 벌어진 일이다.
단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심사위원들은 1만 1천 명의 1차 합격자를 추려냈고,
그중 최종 수상자 25명을 골라냈다.
상식적으로 인간의 눈과 물리적 시간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다.
"학생들에게는 AI를 쓰지 말라 엄포를 놓는 그 연구소야말로,
제출된 글을 AI 디텍터(거짓말 탐지기)에 무더기로 돌리고 있는 것 아닌가?"란
합리적 의심 말이다.
실제로 어제, 막차를 타겠다며 한 학생이 다급하게 글을 보내왔다.
대가 없는 자원봉사이다. 이 친구는 작년에도 나한테 배웠으니까 말이다.
글을 읽는데 냄새가 난다. 너무나도 매끄러운 글, 그런데다 구성 자체도 완벽하다.
나랑 같이 공부하지도 않은 부분도 너무나도 전문적으로 나온다.
혹시나 싶어 나 역시 AI를 돌려본다.
"열려라, 참깨!" 하면서 말이다.
그애가 내게 준 답이다.
"고등학생이 쓴 글치고 구성이 너무 완벽하고 표현에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AI의 도움을 받은 태가 확연합니다."
그러면서 해결책도 있단다. 병주고 약도 주는게, 요 근래 AI다.
어색한 인용구를 넣고 문장을 흐트러뜨려 '인간의 냄새'를 확 풍기란다.
그 AI의 조언을 그대로 학생에게 보냈다.
"고쳐서 제출하그라"
참으로 기막힌 역설의 시대다.
쓰는 학생도 AI의 힘을 빌리고, 가르치는 선생도 귀찮을 땐 AI를 돌려 방향을 잡으며,
평가하는 기관마저 AI 디텍터라는 기계의 눈에 의존한다.
결국 지금 이 시대 글쓰기의 진짜 화두는 '누가 더 논리적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저 팍팍한 AI 디텍터의 눈을 속이고
가장 인간다운 글로 포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
기계를 속이기 위해 문장을 다시 삐딱하게 비틀고,
인간의 서툰 흔적을 일부러 심어야 하는 시대라니.
씁쓸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글쓰기 규칙인가?
무언가, 오도된 아니 전복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거짓말 탐지기를 비웃으며 유유히 빠져나간 그 스파이처럼,
나도 이제 아이들에게 '인간 냄새'를 담아주는 '조향사'가 되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언젠가 글쓰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겄지.
이 열풍이 언제까지 가랴!!
#AI시대글쓰기 #인공지능글쓰기 #AI탐지기 #AIdetector #GPTZero #Turnitin #글쓰기교육 #에세이교육 #논술 #논술교육 #해외대입 #해외대학입시 #존로크에세이 #JohnLockeEssayPrize #영어에세이 #철학에세이 #인문학 #율브린너 #YulBrynner #스파이영화 #거짓말탐지기 #AI역설 #ChatGPT #벼리아카데미 #교육칼럼 #입시칼럼 #글쓰기칼럼 #AI교육#압구정논술 #강남논술


